생로병사에 관하여.. (당뇨병 합병증)
평생 동안 아버지와 단 둘이,
이런 좁디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숨 쉬며 생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쩔 수 없이 언제 나갈지 전혀 예상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뿐만은 당연히 아니겠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병원에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입원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중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애써 낙관하며 또 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버티는 중일 것이다.
그래 나처럼, 저기 힘없이 걸어가는 아주머니처럼...
아버지의 병환이 왠지 모르게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나약한 인간에게 무조건 찾아오는 생로병사에 비하면 나머지 것들은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건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 예민하게 살아왔을까? 공적을 자랑할 만큼 대단한 것도 없었는데..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더 행복해하고 있었을까?
우리 가족은 더 행복하고 건강해져 있었을까?
내일은 마지막 남은 검사인 심장 MRI를 하고,
모레엔 조영술을 할 예정이다.
아, 이전 글에 써 놨지만,
내 아버지는 현재 심근경색으로 입원 중이고 원래 당뇨병 환자이다.
급선무인 혈당수치 조절이 안되고 있는데 나름대로 식사, 수면, 운동, 복용약 등을 관리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건 역시나 어려운 듯하다. 하물며 인슐린 주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나는 대로 당뇨병이란 무엇인지 알아봤다.
소리 없는 살인마..라는 당뇨병..
나무위키에 나와 있는 내용을 끝까지 쭉 읽어 보았다.
혈당 스파이크, 인슐린, 손발절단, 장기부전, 평생 운동, 실명, 철저한 식단 관리 등등.. 쓰다 보면 왠지 질병과 관련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서술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게 뭐야.. 창살 없는 감옥이네..
정말 진정으로 열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너무나 무서운 인생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이 질병을 아버지는 지금껏 어쩔 수 없이 갖고 살아오셨네.. 다시 한번 가슴이 먹먹해진다.
적당히 하지.. 우리도 좀 내려놓고 편하게 살지..
제일 중요한 건강을 먼저 챙기고 나머지는 좀 적당히 하고 살지..
지긋지긋하고 뻔한 그 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잠깐 왔다 가는 짧은 인생에..
나의 부족한 철학적 소양으로는 도저히 이런 상황을 심오한 말들과 연결시킬 수 없다.
그저 담배 한 대 태우면서,
빌어먹을.. 젠장...
이래서 종교가 필요한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애써 외면했던 생로병사가 우리 가족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나의 앞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는 요즘이다.
아버지와 병원 한 켠에 잘 마련된 라운지를 산책 겸 돌며 과거를 회상했다.
어려서부터 천식이 심했던 아버지를 위해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호박을 고아 먹이셨는데 효과가 있어 결혼을 한 뒤에도 아버지는 꾸준히 같은 방식으로 드셨다고 한다.
거기에 벌꿀을 넣으셨는데,
어느 날 가까운 친척이 구해다 주신 제품이 알고 보니 설탕으로 만들어진 가짜 꿀이었고, 그걸 모르고 장기간 섭취하신 아버지는 그로 인해 당뇨가 왔다고 생각하신다.
정말 영향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아버지는 당뇨병 환자가 되셨고, 40대 중반에 심근경색으로 팔과 다리의 혈관을 이식해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으신 건 팩트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의 당분이 혈관 벽 내피세포에 늘어붙게 되는데, 이것을 '당화되었다'라고 표현한다. 문제는 당화 상태가 지속되면 세포 기능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전신에 혈관과 신경이 분포되어 있다. 즉, 지속적으로 높은 혈액의 당분이 혈관 세포와 신경 세포의 기능 이상과 손상을 일으켜, 연관된 장기와 신경에 합병증이 발생한다. 혈당 수치가 나쁘면 나쁠수록 합병증도 더 일찍 발생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혈당조절을 해야 한다. 당뇨병이 있어도 혈당 조절이 잘 되면 합병증의 위험을 뚜렷이 감소시킬 수 있다.
출처: 당뇨병의 정석
간단하게 도표화해서 살펴보면 이러한데,
[1] 고혈당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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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혈당(포도당)이 혈관 내피세포에 달라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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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화 반응 (AGEs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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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혈관 내피세포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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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혈관 기능 저하 → 혈류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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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뇨병 합병증 발생
├─ 작은 혈관 손상에 따른 미세혈관 합병증
│ └ 망막병증 (눈), 신장질환 (콩팥)
├─ 큰 혈관 손상에 따른 대혈관 합병증
│ └ 심장질환, 뇌질환, 말초동맥질환
└─ 신경 손상 (당뇨병 신경병증)
아버지의 병력으로 봤을 때 심장 뿐만 아니라 다른 합병증도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기에 높아진 혈당을 낮추는 작업은 더욱 더 절실해졌다.
공복 혈당 (8시간 이상 금식 후) | 70~99 mg/dL | 100~125 mg/dL: 공복혈당장애 (전당뇨) |
식후 2시간 혈당 | < 140 mg/dL | 140~199 mg/dL: 내당능장애 |
무작위 혈당 | < 200 mg/dL | 증상 + ≥200: 당뇨 진단 가능 |
당화혈색소 (HbA1c) | < 5.7% | 5.7~6.4%: 전당뇨, ≥6.5%: 당뇨병 가능성 |
< 단순 참고용 : 정상 혈당 수치 기준 >
처음 입원한 이래로 약 2주 동안 확인한 아버지의 혈당은 196에서 383 사이인데,
식후 최소 30분 정도 병동을 돌며 걷기 운동을 하시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환자식 외엔 일절 안 드시니 몸무게가 약 2kg 정도 빠졌음에도 혈당 수치는 들쑥날쑥하여 종 잡을 수 없다.
하긴, 이 짧은 기간에 그게 가능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괜히 아버지가 지칠까봐 걱정된다.
아니 앞으로도 지치실까봐 걱정된다.
왜냐하면,
죽을 때까지 지치면 안되는 게 당뇨병이니까..
눈 감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게 당뇨병이니까..
아버지의 생로병사엔,
결국 이 녀석이 절대적이다.